경계에서 쓰다: 아마추어 연구자의 학술지 출판 가이드
박사 학위가 없어도 연구를 이어 갈 수 있습니다. 학회에 소속되지 않아도 논문을 투고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풀타임으로 몸담지 않아도 해외 학술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출발점이 다르고 걸음이 더딜 수는 있어도, 연구의 가능성까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런 분들께 권합니다
- 석사 논문을 마치고 서랍에 넣어 둔 채 다음 길을 찾지 못한 분
- 목회와 생업을 감당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못한 분
- 학위 과정 밖에서 홀로 읽고 쓰는 분
-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싶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
- 거절 편지 한 장에 마음이 무너진 적이 있는 분
쓴 사람
저는 경계에 선 사람입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영어는 더디게 늘고, 오래 사용하지 않은 한국어 표현은 조금씩 낯설어집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지금은 목회 현장에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박사 학위는 없습니다. 낮에는 정보기술 회사에서 일하고, 일과 가정의 책임 사이에서 시간을 모아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연구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읽고 쓰며 신약학과 구약학, 제2성전기 유대학 분야의 여러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실을 밝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위를 원하지만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생계를 책임지느라 공부할 시간을 내기 어렵고, 가정을 돌보는 동안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도 합니다. 건강이나 경제적 형편, 제도의 장벽으로 눈앞의 문이 닫힐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무게를 알고 있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모든 장벽을 넘을 수 있다고 가볍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꺼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 읽고, 떠오른 생각을 한 줄씩 기록하며, 오늘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연구를 이어 갈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멀리 가지 못해도 하루의 한 문장이 한 단락이 되고, 한 단락이 쌓여 한 편의 글로 자랍니다.
그렇게 시간을 쌓다 보면 굳게 닫힌 듯했던 문이 뜻밖에 조금 열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누군가 원고를 읽어 주고, 예상하지 못한 답신이 도착하며, 오래 붙들었던 글이 마침내 한 학술지의 지면을 얻기도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순간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왜 이 책을 썼는가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뒤, 예상하지 못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한국과 해외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분들이 제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질문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연구 주제는 어떻게 찾는가. 학술지 논문은 어떻게 쓰는가. 자기만의 방법론은 어떻게 세워 가는가.
어느 신학교에서는 같은 주제로 2년 연속 특강을 했습니다. 따로 연락해 조언을 구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학생도 있었고 교수도 있었습니다.
몇 해 동안 대화를 이어 가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습니다. 제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와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배움이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저의 긴 답입니다.
이 책이 걷는 길
1부 · 다른 학자들의 이야기
저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아홉 학자가 쓴 열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는지, 생각을 어떻게 글로 옮기는지, 한 편의 논문을 어떻게 구상하고 완성하는지를 살펴봅니다. 학술 출판은 어떤 원리와 관행으로 움직이는지, 학자로 살아간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지도 그들의 지혜를 빌려 생각합니다.
2부 · 내 이야기
제가 직접 지나온 길을 스물여섯 개의 장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심장을 뛰게 하는 물음을 붙드는 일, 떠오른 생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 거절의 이유를 나누어 읽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심사자가 사실을 잘못 짚었을 때 편집자에게 정중하게 재검토를 요청하는 방법, 침묵이 길어질 때 원고를 철회하는 절차, 학술지의 간판과 인용수 앞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태도도 다루었습니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문의 메일과 철회 메일의 예문은 제가 실제로 사용했던 문장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부록 · 투고를 앞두고, 답을 받기까지
투고 전후에 곁에 두고 쓸 실무 점검표를 따로 정리했습니다. 네 묶음, 스무 항목입니다: (1) 투고하기 전에, 학술지를 고를 때 아홉 가지, (2) 원고를 보낼 때, 함께 챙길 것 네 가지, (3) 투고한 뒤에, 답을 기다리고 받을 때 다섯 가지, (4) 게재가 결정된 뒤 두 가지.
이 책이 약속하지 않는 것
첫째,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공식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해서 같은 결과에 이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책이 건넬 수 있는 도움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지도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이 길가에 남겨 둔 작은 표지에 가깝습니다.
둘째, 학술지에 등급을 매기지 않습니다. 학술지마다 역사와 독자층, 심사 강도와 영향력이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하나의 고정된 서열표로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술지의 위상은 누구의 손에 들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정밀한 잣대보다, 여러 사람의 평가가 겹쳐 형성된 느슨한 합의에 가깝습니다. 연구 분야와 방법론, 지역과 세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지면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학술지가 더 높고 낮은지를 정해 주기보다, 자신의 연구에 맞는 학술지를 찾아가는 기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경계는 해안선입니다
경계는 흔히 변두리로 읽힙니다. 중심에서 밀려난 자리,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자리입니다. 솔직히 저도 오랫동안 경계를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경계는 변두리보다 해안선에 가깝습니다. 두 세계가 맞닿는 자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신학과 다른 학문 사이. 신앙과 학문 사이. 학계의 안과 밖 사이.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
제가 그 틈에서 남들이 지나친 장면을 조금이나마 보았다면, 그 공은 제 눈보다 제가 서 있던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경계에서 쓰다』라고 지었습니다.
지금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더라도, 그 자리에서만 보이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을 수 있는 만큼 읽고, 오늘 쓸 수 있는 만큼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걸음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이 책이 저와 같은 자리에 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구매하시는 분께 드리는 부탁
이 책은 독자분들의 자율과 신뢰에 기대어 판매합니다. 한 권을 구매하신 분께 PDF와 EPUB 파일을 함께 제공해 드리는 만큼, 독자 한 분 한 분의 배려가 이 방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구매하신 파일을 복제하거나 다른 분께 전달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권의 구매가 다음 글을 쓰게 합니다.
감사합니다.